내가 몰랐던 건축
건축이란 무언가를 짓는 행위다. 집을 짓기도 하고 교회를 짓기도 하고 빌딩을 짓기도 한다. 나에게 건축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여행을 하고 매체에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해당 건물이 가지는 의미와 저렇게 지어진 배경들을 알게 되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에게 흥미를 유발한 요인 중 하나가 <공간이 만드는 공간>의 저자인 유현준 교수다. 그는 알쓸신잡과 같은 TV프로그램은 물론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활동하며 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과 지식을 전파한다. 평소에 해주는 이야기를 상당히 재밌게 들었던 나로선 책에서 만나는 유현준 교수의 이야기가 어떤 내용일지 상당히 궁금했다.
동서양의 건축과 공간
유현준 교수의 책은 많지만 이번 책에서는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을 바라봤다. 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서양의 건축방식이 어떻게 다르고 발전해 왔는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건축뿐만 아니라 해당 개념이 보드게임, 사상, 사후세계 등 다양한 요소에서 작용하여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낸 과정을 설명하고 뒷부분엔 이러한 문화가 합쳐지고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문화가 되는 과정을 다룬다. 모든 설명은 벼농사와 밀농사로 출발한다. 벼와 밀은 인간이 농업혁명을 이루게 해 준 중요한 작물이다. 주요 문명권에서는 벼 아니면 밀 농사를 지었는데 이를 결정하는 것은 강수량이다. 강수량을 기준으로 연중 1000ml 이하면 밀농사를 짓고 이상이면 벼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따라서 서양권은 밀농사를 동양권은 벼농사를 지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서양은 땅이 단단하기 때문에 돌로 벽을 세워 사방을 둘러싼 형태로 집을 짓고 공간을 만들었다. 동양의 경우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땅이 단단하지 못해 벽을 세우면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주춧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사이를 막아서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텅 비어있는 뜻의 SPACE와 기둥과 기둥사이 빈 공간이라는 뜻의 空間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벽을 세워서 집을 만든 서양인들은 외부와 내부의 구별이 뚜렷했다. 따라서 집외부보단 내부를 꾸몄고 건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동양은 기둥중심의 건축이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모호했으며 이는 곧 풍경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는 풍수지리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고 피라미드, 대성당 같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건물이 없는 배경이 된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의 건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세계라는 무대가 압축이 되고 문명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축이 등장한다.
두 문화의 만남
동양과 서양의 문명은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왔다. 하지만 교류하는 방식은 실크로드를 통한 육로가 전부였다. 동양권 사람들이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봤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후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양식을 따라가게 된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경위는 바로 해양 무역로의 개척이다. 이 과정에는 경제적인 배경과 과학적인 배경이 숨어있다. 향신료를 독점하던 이슬람상인들의 폭리를 견딜 수 없었던 서양 문명은 삼각돛을 개발하여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과 만났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양의 건축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반스 반데어 로에 같은 건축가가 기둥과 처마 형식을 띤 건축물을 만드는 한편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 건축의 5원칙을 만들었는데 이는 동양의 건축과 상당히 닮아 있다. 근대 건축 5원칙이란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하지만 5번째 원칙은 4번째 원칙의 하위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옥상정원의 개념을 제외하고는 동양의 건축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은 이렇게 두 문화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나갔고 이후에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같은 양식이 등장한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로 철근, 콘크리트 와 같은 새로운 자제의 등장과 엘리베이터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후에도 현대사회에서 공간이 주는 정의를 우리가 직면한 지구온난화, 감염병의 유행과 연관 지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줄이며
책 부분 부분에 전문적인 요소가 녹아있지만 건축의 역사와 원리를 상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명확한 설명으로 동서양 건축의 차이를 문화로서 풀어낸 것은 재미있는 교양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형태를 이해하고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공간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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