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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책 이야기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법의학자가 바라본 죽음) : 유성호

by 독서하는 나그네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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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표지

법의학과 죽음

법학이면 법학이고 의학이면 의학이지 법의학은 뭘까? 법의학은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 중에서 죽음에 관여한 손상과 질병의 원인 · 경과 · 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들의 인과관계를 확인 함으로써 인권을 옹호하고 나아가 사회질서유지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본인을 죽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법의학자로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만났으니 작가가 죽음에 대한 각별한 생각을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 젊은 나에겐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법의학의 가치

죽음의 종류를 말하라고 하면 어떤 대답을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살과 자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법의학자인 작가는 본인의 직업상 죽음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동일한 부위에 상처가 있더라도 나이에 따라 상처가 난 이유가 다르고 같은 나이더라도 어디에 상처가 있느냐도 다르다. 정확한 검시를 통해 공정한 수사에 기여하는 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건을 다루면서 법의학이 어떻게 사회에 이바지하는지 설명한다. 사고사로 위장한 어느 불쌍한 사람의 죽음을 밝혀내거나 보험사기를 위해 꾸며진 사건을 밝혀내기도 하고,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기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법의학이 상당히 가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법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40명 정도밖에 없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직업상 시체를 매번 봐야 하는 법의학이 매력이 없을 수 도있지만 법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생각

죽음을 주제로 하는 만큼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다룬다. 낙태를 하는 것이 살인죄로 적용되는가? 태아가 사람인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언제 사망한 것인가? 뇌기능이 정지되면 사망한 것인가? 자연적 호흡이 불가능하면 사망한 것인가? 전부다 하나같이 어렵고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준 것은 안락사에 관한 것이었다. 안락사란 말 그대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의미한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생명유지를 위해 독한 약물을 복용하거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명할 경우 환자의 뜻을 받아들여 잠자는 동시에 생을 마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의견으로는 환자가 더 이상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싶지 않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한 결정이기 때문에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의견과 아무리 그래도 사람에게 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의견이 대립한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자살한 것으로 비칠 수 또 있다. 책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기 전에 본인이 심정지를 해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에 언론에서는 추기경께서 존엄사 하였다고 보도했고 가톨릭 측에서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 후 존엄사라는 표현은 선종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저마다 세부사항과 허용범위가 다르지만 벨기에,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죽음에 대한 준비

과거와는 다르게 인류는 더 오래 산다. 갑자기 죽는 것(사고로 맞이하는 죽음) 보다 예견된 죽음(병, 노화로 인한 죽음)이 더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3종류의 태도가 존재한다고 한다. 첫 째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끝, 자연의 마지막 질서이자 나의 스토리의 마지막 종결로 보는 태도다.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맞이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 세상 소풍 잘 끝내고 간다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둘 째는 사후세계로 가는 관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본인의 소임을 다하고 하나님에게 돌아가거나 윤회의 길에 들어서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는 부정적인 결말이다. 고통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드디어 끝을 맺는구나, 드디어 삶에서 탈출하는구나, 이제 다 끝이구나... 하는 식이다. 행복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얼마든지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날지는 정할 수 없지만 그 대신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날지 고를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이며

법의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은 새로웠다.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쳐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죽음과 가장 연관되어 있는 직업은 의사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죽음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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