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의 재미
책을 읽다는 다는 게 상당히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행위로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야 독서를 할 때 여러 책을 넘나들면서 읽지만 예전에는 책 한 권을 끝내지 않으면 찝찝한 느낌이 들어서 억지로 다 읽곤 했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 혹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만 독서를 하곤 했는데 이런 허들을 넘기에 좋은 유형의 책이 단편선 인듯하다...!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단편선 하나하나 읽어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물론 처음 만난 단편선이 라쇼몬이었기에 재밌었을 수 도 있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중학교 때 라일락...으로 시작하는 단편집을 읽고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마죽
개인적으로 라쇼몬 보다는 '마죽' 에피소드가 더 재밌었다. 당대 고급 음식이었던 마죽을 평생 마셔보는 게 소원이었던 하급관리가 본인도 모르게 내뱉은 속마음을 고위 관료가 듣고 실컷 먹게 해주는 내용이다. 내용 자체는 간단하지만 하급관리의 감정묘사와 그토록 원하는 마죽을 실컷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엄청난 양의 마죽을 마주하니 토를 할 것 같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현시대를 고찰하는 것 같았다. 물질적인 것을 끊임없이 원하고 갈망하는 시대. 어쩌면 하급관리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마죽을 실컷 먹는 일이 소원으로 남아있었을 때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지옥변
지옥변은 솜씨 좋은 화가가 영주로부터 부탁받은 지옥변(지옥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그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때 화가의 딸은 영주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화가는 본인이 눈으로 본 것만 그린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자들을 불러 지옥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덕분에 지옥변을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었지만 귀족여인이 차있는 마차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구현해 낼 수 없었던 화가는 영주에게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영주는 달 밝은 밤 화가의 딸을 마차에 태운채 불태워 버리면서 부탁을 들어준다. 화가는 그 장면을 눈으로 담았고 마침내 지옥변을 완성한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작품에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예술이 뭔지, 권력이 뭔지, 여자와 남자는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직 작품해설 능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두자춘
두자춘이라는 인물의 깨달음을 그린 이 작품은 어린이 대상으로 쓰였기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상당히 명확하다. 바로 부모에 대한 효심이다. 효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두자춘은 짧고 강렬하다. 인간사에 질려버린 두자춘은 신선이 되기로 결심하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한다. 스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두자춘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자리를 비운다. 두자춘은 천둥 번개, 호랑이와 뱀, 염라대왕 앞에서 스승의 경고를 생각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심지어 불교의 지옥들에서 몸이 베이고, 끓여지고 뇌수가 빨아 먹히는 등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참아 낸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두자춘 부모님의 얼굴을 가진 두 마리의 소를 데려와 고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자춘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 부모 걱정은 하지 말고 오직 네 걱정만 해라' 이때 두자춘은 도저히 참을 수없는 신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눈앞의 환상은 사라졌고 두자춘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줄이며
전술한 작품들 외에도 갓파, 라쇼몬, 코 등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세계를 무대로 한 작품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알기 쉽게 쓴 문체가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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