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값은 노트북입니다.
소설 주인공인 블랑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타고 '극락'에서 내린다. 하지만 그곳은 이름처럼 극락이 아니다. 이 작품을 읽게 된 나의 상황이 조금 비슷했다. 드디어 학생증이 나와서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부푼 마음으로 도서관을 한 바퀴 둘러봤다. 그렇게 첫 만남을 마치고 자리를 잡아 노트북을 세팅했다. 그런데 3분 있다가 노트북이 꺼져버렸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효과는 없었다. 이제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그렇게 내일 출장 서비스를 예약한 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고전 서고에 이르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탔다.
미국남부 소설
20세기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문학이나 영화작품이 많기에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을 상상해 내는데 어렵진 않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박이라는 음식은 시대적 배경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내가 접했던 20세기 미국남부 소설은 주로 흑인 인권, 백인들의 탄압과 같은 인종차별적인 주제를 다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대립구도는 신선했기 때문에 재밌게 읽었다. 또한 남부지역 여름의 더위와 다소 직설적이고 농밀하기까지 한 성적 농담과 욕설이 분위기 형성에 도움을 준 점도 한 몫했다.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진실이어야 하는 것을 말하겠다
짧은 내용 속에서 테네시는 인물들의 성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먼저 블랑시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진실이어야 하는 것을 말하겠다' 며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이 시궁창이라면 거짓으로라도 만들어낸다. 블랑시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이해가 간다기보다 그녀의 행동에 개연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추락한 그녀가 선택한 삶의 길이 나로서는 다분히 아쉽지만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없었을 것이다. 나였다면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멀리 떠났을 것 같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글을 적기 전까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부끄러움이 사라지지 않는 다면 굳이 떠나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스텔라의 삶이 가장 현대인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상처받고 미쳐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다. 내가 같이 자라온 가족과 내가 꾸려나가야 할 가족 (스텐리)이 대립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블랑시와 스텐리의 대립은 스텐리가 미쳐버린 블랑시를 겁탈하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스텔라는 스텐리와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끌려나가는 언니를 보며 목놓아 우는 것뿐이었다. 스텐리가 우는 스텔라를 달래며 블라우스 단추가 풀린 곳으로 손을 뻗는 장면은 스텐리를 잘 표현하는 장면이다. 미치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생각만으로 남겨두려 한다.
줄이며
분량이 170페이지가량 되기 때문에 금방 읽을 줄 알았지만 꽤나 시간이 걸렸던 작품이다. 누군가와 얘기가 통한다는 것,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분야가 드러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작품은 나에게 그러지 않았지만 그렇게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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