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 이야기

호주 마지막 이야기

by 독서하는 나그네 2023. 8. 19.
반응형
SMALL

워홀 마지막 이야기

성장했는가?

호주에서 돌아왔을 때는 누구보다 달라져있고 싶었다. 그 기준으로 돈과 건강을 잡았고 열심히 노력했다. 다만 내가 호주에 적응하고 루틴이 잡힌 상태에서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 아쉽다. 그렇다고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첫 째, 뭐든지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낯선 땅에 처음 들어와서 무시받고 힘들었던 경험은 지금은 추억이 됐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다가 봉지가 터져 비를 맞으며 손으로 주워 담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맨손으로 하수구를 뚫으며 오물이 몸을 덮은 날을 기억한다. 나는 소의 내장, 기름, 핏줄, 눈알과 같은 부산물들을 치우며 석탄을 삽으로 옮기던 날을 기억한다. 둘째, 돈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호주에서 8개월가량 있으면서 가장 마지막날에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드니에서 머물렀던 단 하루가 나에게 충격을 줬다. 아무 생각 없이 늘어선 골목길은 너무 아름다웠고 추운 새벽 이름 모를 커피집에서 마신 모카 한잔은 세포 하나하나를 깨웠다. 셋째,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내 몸과 성격에 대해 객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소심하고 그릇이 크지 않다.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강약약강이다. 나는 수염이 비대칭적으로 자라며 앞머리 중앙에는 이상하리만큼 숱이 없다. 나는 가슴이 발달한 게 아니라 살이 많은 것이다. 나는 운전을 잘 못한다. 나는 상당히 충동적이며 이성적인 생각을 잘 못한다. 나는 남의 시선을 상당히 신경 쓰며 평판을 중요시한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 나는 인정욕구가 강하다...... 나열하면 끝이 없다. 게임, 영화, 친구, 여자, 미래, 점심메뉴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며 살았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지나온을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비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고등학교 장래희망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렵다. 아주 어렵다. 나에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정해진 운명 같았다. 집에서는 국립대만 가라고 했고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이었고 학생기록부가 그걸 잘 말해준다. 그리고 학생본인의 장래희망을 보면 축구선수, 외교관, 통역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장래희망을 공무원으로 적어서 낸다. 하지만 호주에서 여러 가지 인생이 있다는 걸 느꼈다. 젊은 시절 넘어와 요리를 배워 가게를 차린 사장님, 결혼 후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디제잉하는 학생, 비자 없이 불법으로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가게 직원, 온 가족이 이민하기 위해 수년씩이나 일하는 노동자들, 고등학교 중퇴하고 아버지와 공장에 다니는 딸, 아빠의 성폭력을 피해 엄마와 이사 온 어린 소년,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며 호주로 여행을 온 성소수자. 그곳에서 내 인생은 무색무취했다. 아직도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릇을 키우는 일 임은 확실하다. 무엇을 얼마나 담던간에 지금 내 그릇은 너무나 작다.

줄이며

고등학교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3분쯤 통화하다가 친구가 한마디 했다. '왜 이렇게 기가 죽어있어? 내가 알던 네가 아닌데?' 그때 느꼈다. 내가 위축되어 있다는 걸.. 지금 내가 걷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요즘은 불안감이 더 심해진다.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