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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책 이야기

기록의 쓸모 : 이승희

by 독서하는 나그네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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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쓸모

기록한다는 것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손짓과 몸짓은 없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행위는 조금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기록의 목적에 따라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선조들은 후대를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했고 그들의 목적대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은 동아시아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티베트에서는 죽은 사람을 안내하기 위해 '사자의 서'를 만들어 영혼을 안내했다. 이처럼 기록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을 해왔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문맹률이 낮아지고 누구나 기록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기록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기록은 어떤 특별한 점이 있고 어떤 쓸모가 있을까?

 

나의 기록

작가는 책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회의와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서. 즉, 잘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기록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졌다.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기록한 적은 중학교 2학년 때 한 학기 동안 일기를 쓴 것이었다. 조금은 허무했다. 내가 기록의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닌 단순한 숙제로, 타의로 기록을 했다는 사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다음 기록의 기억은 군대로 이어졌다. 지휘관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기록했고 나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기록했다. (업무를 하다 보면 구두로 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메신저나 공문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다... 반드시!!) 하지만 그 기록도 해당 업무가 끝나면 버려지기 일쑤였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진 못했다. 전역 후 갑작스럽지만 독서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생명력 있는 기록이 시작됐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책에 메모를 해두고 다시 읽곤 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과 책을 다 읽고 정리할 때 느끼는 감정이 달랐기 때문에 책을 두 번 읽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나에게 기록이란 장비와 장소라는 격식을 갖추고 이유가 있어야 행하는 일종의 의식행위가 되었다.

 

작가의 기록

작가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느낀 작가가 기록하는 법은 정해져 있지만 정해져 있지 않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작가도 작가만의 기록하는 노트와 인터넷 계정, 자주 사용하는 볼펜 등이 있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장비와 플랫폼들은 어디서나 기록하기 위해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기록하는 행위를 하나의 과업 내지 일과로 여긴 반면 작가는 양치하는 것처럼 일상에 녹여냈다.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하나의 책이 되고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부탁한 방명록이 하나의 기록이 된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기록이 생명력을 얻는 방법은 기록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나는 옛날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학교 친구를 약 7년 만에 만났는데 내가 매일 회상하던 기억과 다른 것이다..! 나는 빠르게 사과했고 짜깁기된 기억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기록했다면 정확한 기억을 할 수 있었을까? 한 번은 친구가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며 추억을 얘기한다. 그 사진이 친구에게는 모종의 기록일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배운다.

 

기록의 쓸모

일을 잘하기 위해서, 까먹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모두 기록의 쓸모다. 나는 특정 물건이나 행위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때 흥미를 느낀다. 식초를 섬유 유연제로 쓰고 신문지로 창문을 닦는 것처럼 '이렇게도 쓸모가 있네'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기록의 쓸모를 발견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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