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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책 이야기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 오무라 오지로

by 독서하는 나그네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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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

알고는 있었지만

세계사의 간략한 흐름은 학교에서나 티브이 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봐서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국제사회는 복잡하게 얽혀있었으며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주체들이 활동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요 쟁점은 종교, 문화, 인종 등 다양했지만 모든 분쟁의 교집합에는 '돈'이 있었다. 종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돈으로는 설명이 되고 인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역시 돈으로는 설명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의 굵직한 이야기들을 돈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작가가 일본 국적인 만큼 일본의 상황을 예시로서 많이 사용하는데 이 부분이 신선했다. 영국이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을 통해 패권국가로 군림하고 파운드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던 시대부터 브레튼 우즈 체제, 닉슨 쇼크, 더 나아가 앞으로 경제 전망까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가 초등학교 때 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았다. 신사의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역사와 전통이 잘 어우러진 나라,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 등. 영국 왕실 근위병들은 절도 있어 보였고 런던을 돌아다니는 빨간 2층 버스는 언젠가 타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역사책 뒤에서 바라본 영국은 결코 신사의 나라가 아니었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절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화했다. 한때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것처럼 당시 시대상으로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다. 영국은 인도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종교 갈등을 일으켰고 그 결과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가 분리 독립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청나라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아편을 팔았다. 이 밖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 싶었던 유대인, 그리고 프랑스와의 중동 분할 협약, 총 3개의 비밀협약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꾀했다. 물론 이 분쟁은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해 더 근본적인 상대방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가 강대국에게 허용됐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부터 밸푸어 선언, 유엔의 개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 설정, 미국의 이스라엘 건국 승인, 제1, 2차 중동 전쟁 등 중동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석유는 달러로

금본위제는 닉슨 쇼크를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채권을 발행해서 통화량을 조절한다. 따라서 국가의 신용이 중요한데 미국은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모두 적자인 쌍둥이 적자를 매해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외환 보유량 대부분을 달러로 채우려는 이유가 뭘까? 바로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기축 통화란 세계 화폐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의 흐름이 영국을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석탄과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은 영국을 경제대국의 위치에 올려놓기 충분했다. 하지만 석유가 발견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석유는 석탄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에너지 자원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다양한 자원을 생산할 수 있기에 그 가치가 석탄보다 높다.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기 전 미국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미국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석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미국은 중동 여러 국가에서 석유가 발견되자마자 협상에 들어가고 결국 모든 '석유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진다'라는 룰을 만들어 냈다. 전후 사정이 생략됐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도 이라크가 석유 결제 대금을 유로화로 지불하여 이러한 룰을 깼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쿠웨이트 등등 석유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 이에 개입한 미국과 영국, 다시 이데올로기로 갈라서는 미국과 소련.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줄이면서

세계사를 돈의 흐름으로 읽다 보니 도덕적이지 않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됐다. 돈은 더러운 것일까? 생각이 들다가도 개인이 이기심이 국가적 차원에서 나타날 때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당시 영국 시민이라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많은 의문 속에서도 확실한 진리는 평화는 종이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약속을 하고 또 파기하고 먹고 먹히는 그런 관계는 계속된다. 세계를 지탱하는 힘의 가치는 다양하다. 하지만 같은 미용실을 다니기라도 하는 듯 뒷모습은 모두 돈으로 보인다. 피할 수 없다면 인정하고 미래를 예측해 보는 건 어떨까? 돈의 역사와 거시적인 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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