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제목이 꽤나 강렬한 책이다. 서핑을 즐긴 후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일어난 교통사고 후에 뇌사판정을 받고 장기기증을 하기까지 만 하루를 그린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몰려오는 파도와 심장박동을 표시한 붉은 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죽음을 소재로 다룬 책인 만큼 철학적인 질문과 한 인물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피한 사람들
주인공이자 사건의 주인공인 시몽은 친구들과 서핑 후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사에 빠진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안전벨트를 했지만 시몽은 하지 않았고 게다가 가운데 좌석에 앉았던 탓에 앞유리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친구들은 골절상만 입었지만 시몽은 뇌사에 빠지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온 각각의 부모들은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안전벨트를 권했더라면, 내 아이가 가운데 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다 같은. 한 부모가 시몽의 어머니에게 뇌사판정 후 깨어난 사례를 얘기하며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모습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생각을 등장인물들에게 투영해 봤지만 어느 입장하나 마음 편하지 않았다. 물론 실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다.
죽음을 선고하는 사람들
의사들은 본인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의사가 환자를 살리는 직업으로 알고 있다. 물론 맞다. 하지만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하는 것도 의사다. 물론 사망한 환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가족들에게 하는 것이 문제다. 의심의 여지없이 환자의 심장이 멈추고 안색이 변했다면 의사의 부담은 줄어들까? 하지만 시몽은 '뇌사'상태다. 쉽게 말해 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의식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심장도 뛰고 있고 사지는 멀쩡하다. 피부도 검게 변하지 않았으며 몸도 따뜻하다. 그래서 시몽의 어머니는 의사에게 뭐라도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해보지만 의사는 진단결과를 토대로 희망이 없음을 다시 한번 전한다. 그리고 정말 야속하게도 장기기증에 대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시몽의 어머니는 깊이 생각한 후에 장기기증을 결정하지만 시몽의 눈빛만은 잃고 싶지 않아 안구적출은 반대한다. 동의를 얻은 의사는 유관기관과 협력을 통해 장기기증 절차를 밟는다.
새 삶을 얻은 사람들
장기이식의 절차는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팀, 수송팀, 환자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 한 통에 긴장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다. 환자 역시 장기이식의 우선순위에 있다고 수술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다. 사망한 사람의 장기가 본인에게 적합할 때 비로소 수술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사들은 모든 걸 검토하고 사망선고를 한 사람으로부터 시한부를 선고했던 사람에게 장기이식을 시작한다. 그렇게 이식된 장기는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점차 새로운 몸에 적응해 간다.
남은 사람들
장기이식을 성공정으로 마치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나는 남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어린 여동생, 사고 후 살아남은 친구들, 20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친구, 사이가 나빠 별거 중이던 부모님. 각자 시몽의 죽음이 선사하는 바가 다르듯이 이겨내야 할 시련도 다르고 필요한 시간도 다를 것이다.
줄이며
단순한 죽음이 아닌 '뇌사'를 소재로 다룬 게 신선했다. 기존에 생각하던 죽음과는 결이 달랐기에 흡입력 있게 읽었다. 장기기증에 얽힌 이해관계들이 복잡하면서도 단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소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이성과 감성은 불가분의 영역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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