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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책 이야기

열한 계단 : 채사장

by 독서하는 나그네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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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책표지

표류하는 배와 백발의 노인

이 책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로 시작한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읽고 나서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줄을 읽었다. "때문에 노년의 사람이 주름과 무성한 백발을 가지고 있다고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 모른다" 뼈를 때렸다. 비록 내가 백발도 아니고 주름도 많지 않지만 나름 법이 정한 기준에서 성인이었고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 나로서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항해를 한 것인지 표류를 한 것인지 알고 싶었고 만약 표류했다면 이제 닻을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불편한 지식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누군가에겐 명성이 다른 누군가에겐 부가 그 척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렇게 단순 할리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서 작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단순한 것들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시간이 갖는 가장 큰 힘은 뭘까? 나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변화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론 변화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나는 항해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좋은 변화에 대해 생각했고 좋은 변화는 다른 말로 '성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성장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자라 있는 것도 성장일 것이다. 하지만 항해를 원하는 나에게 더 이상의 큰 배는 의미가 없다. 작가는 성장을 위해 '불편한 지식'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무슨 의미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불편한 지식들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불편한 지식들은 내가 믿는 사상이나 이념과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동전에는 양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불편한 지식들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편한 지식들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내 생각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지식들을 통해 내 생각을 굳히는 것, 이게 불편한 지식을 통한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까지 그렇게 이해했다.

마주해야할 불편한 지식들

열한 계단

작가의 계단은 '소년'과 '문학', '기독교'와 '불교', '철학'과 '과학',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나'와 '초월'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계단마다 주요 사상이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사 앞에 앉아있는 청중이 되어 재밌게 책을 읽었다. 내가 마냥 재밌게 읽었던 이유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 이야기를 들으면 고타마 싯다르타의 인생이 궁금해졌고 철학 이야기를 늘으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계단을 높이 올라갈수록 재미보다는 질문들이 생겨났다. 수평선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서 미리 다녀온 자들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삶은 무엇인지, 죽음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나는 누구이고 초월은 무엇인지. 선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나는 아직 모른다고. 인생에 엘리베이터는 없다. 묵묵히 걸어 올라가야 할 뿐이다. 설령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해도 타고 싶지 않았다. 성장하고 싶었다. 물론 작가의 계단과 나의 계단이 같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계단에 서로 다른 순서와 이름이 붙어있으리라.

작가의 열한 계단

 

내가 올라온 계단

책은 변증법을 통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정'과 '반'이 한 층의 계단을 이루고 '합'은 다시 '정'이 되어 이를 반복한다. 작가는 '소년'에서 시작해 총 열한 계단을 올라 '초월'에 도달한다. 그리곤 얼마나 더 높은 층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문득 내가 올라온 계단이 궁금해진 터라 생각에 잠겼다. 나는 성경을 완독하지도 철학자 한 명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도 없다. 논리적 글을 써본 적도 우주에 대한 고찰도 해본 적이 없다. '처음 불편했던 적이 언제일까?'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는 곧 불편함으로 변했고 첫 번째 계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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